도쿄 스케치#4

2023. 2. 28. 01:03

저녁은 니시아자부에 위치한 明寂(みょうじゃく)라는 일본요리점에 방문했습니다.

미슐랭 2023 도쿄에서 기존 2스타나 1스타->2스타 승격을 제외하고 완전 신규 입성으로는 유일하게 2스타를 획득한 곳으로

점명의 寂는 侘び寂び(와비사비)할때의 寂인데 즉 화려하기보다는 일견 수수한 듯 보이지만 재료가 갖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일본적인 미의식을 추구한다고 합니다.

 

여행을 하드코어하게 다니다 보니 평소에도 베스트인 컨디션으로 식사를 하는 경우는 잘 없지만 이날은 아예 수면시간 1시간에 체력 안배 없이 돌아다니다가 방문했기 때문에 상당히 망한 컨디션.

시작으로 주문한 술은 지콘 쥰마이다이긴죠 나바리

거 맛있는 술이야 맛있는 술이겠지만 입 안도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그냥 알콜 소독하듯이 마신 게 아쉽습니다.

水煮 미즈니

요리의 시작으로 나온 표고버섯의 미즈니

어떻게 보면 이 가게의 컨셉트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요리로 아이치현 치타반도의 원목 표고버섯을 사용하였고 다른 재료로 다시를 내지 않고 오직 표고버섯과 소금, 물만으로만 맛을 냈으니 국물까지 마셔보라고 합니다. 표고버섯 자체의 진한 향을 느낄 수 있던 요리.

源平和え 겐페이아에

이건 숭어의 알과 시라코로 만든 디쉬였던 것 같은데 찾아보니까 겐페이아에가 겐페이합전의 두 진영의 깃발을 표현한 뭐 그런 요리라고 합니다. 알과 시라코, 그리고 밑에 깔린 감과 배로 그걸 표현한 듯

오츠쿠리는 足赤えび(아시아카에비)와 도미

앞쪽의 왼쪽 소스는 에비미소로 만든 쇼유였고, 오른쪽은 도미로 만든 소금 타레, 와사비 옆의 가루는 도미 살이 들어간 간장으로 만든 파우더

따로 어디에 뭐를 찍어먹어야 하고 이런 건 없다고 해서 다양한 조합으로 맛보았습니다.

사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외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는데 이때까지는 서양인 스탶분께서 저한테 영어로 설명해 주셔서 멀뚱히 끄덕끄덕 하거나 옆팀 설명을 주워 들었던 것.. 아무리 한국의 주입식 영어교육을 들은 몸이라고 해도 생선 같은 재료 이름이 되면 영어보다는 일본어가 훨씬 익숙하기 때문에 조금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다행히 이 뒤로는 일본어 괜찮냐고 해서 괜찮다고 했더니 일본어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다음 술을 뭘로 할지 물어보길래 메뉴판에 있는 아라마사를 읊었더니 메뉴판 말고도 있다고 아예 다 꺼내주셨음.

(결국 이날 이 4종류 다 마셔봄)

아라마사 앗슈(Ash)

니혼슈알못인데 니혼슈에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바닐라향과 독특한 향이 무척 신기했어요.

나중에 카메노오 품종의 다른 니혼슈를 마셔볼 기회가 있었는데 약간 비슷한 뉘앙스가 느껴지긴 했지만 역시나 이쪽이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던

沢煮椀 사와니완

곰 기름을 사용한 오완이라고 합니다.

갖은 야채를 사용한 오완을 사와니라고 한다는데 다이콘, 마코모다케, 에노키다케, 2종류의 파, 흰 곤약 등 6종의 흰 야채가 들어갔고 위에는 후추, 옆의 노란색은 국화꽃

잘게 썰은 야채의 식감은 물론 훌륭했지만 맛 또한 국물에 곰 기름이 들어가니 풍미가 한층 더 끌어올려져서 그런지 좋았습니다.

부리다이콘

앞의 다이콘오로시 위에는 一味唐辛子(이치미토우가라시 고춧가루)가 올라가 있고

방어는 짚으로 껍질 부분을 태웠고 밑에는 레몬즙, 소금, 무, 파 등이 들어간 소스가 깔려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에 이날 원초적으로 맛있다고 느끼기보다는 그냥 최대한 기억 속에 맛을 담아가기라도 하자는 마음가짐이었는데 이거는 워낙 강력한 맛이라서 입에 넣으니 자동으로 맛있었습니다.

겨울 방어가 원체 맛있기야 하지만 기름진 방어의 맛과 방어의 약간의 산미를 밑의 소스가 돋궈주고 껍질 부분도 연기를 먹여 놓으니 밸런스가 좋았던

蒸し物 무시모노

東寺蒸し(토우지무시)

東寺는 교토에 있는 절인데 유바가 유명해서 유바를 이용한 요리를 토우지OO라고 칭한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요리는 가장 위에 유바, 그 밑으론 이모, 스프는 순무의 스리나가시로 유바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났습니다.

絹巻寿司 키누마키즈시

メヒカリ(메히카리, 아오메에소)를 사용

먼저 얇은 계란 지단 위에 샤리와 생선의 머리와 뼈, 꼬리를 바삭하게 튀긴 것을 얹고

마지막으로 몸통 부분을 앞다이에서 구워서 얹어주십니다.

설명을 제대로 못 들어서 몸통 빼고 싸 먹으려고 했는데 헐레벌떡 와서 다시 모양 잡아주심 ㅋㅋㅜㅜ

머리 같은 부위의 바삭하고 쌉쌀한 맛이 같이 어우러져서 오히려 좋았던 요리

아라마사 이단교조주식회사 H28(2016년도)

아라마사 팬한테 혼날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앞의 애쉬와 큰 틀에선 비슷한 뉘앙스였고 바나나 비슷한 향이 났습니다.

카니만쥬

香箱ガニ(코우바코가니, 이시카와현에서 암컷 즈와이가니를 부르는 명칭)를 사용

안에는 内子(우치코, 난소)와 外子(소토코, 알)가 들어가 있어서 젓가락으로 3등분 정도로 먹으면 되고 도중부터는 옆의 생강과 사과 채 썬 것을 곁들여 먹어도 된다고 하십니다.

三輪漬け 미츠와즈케

가운데가 다이다이(橙, 광귤)라는 귤의 일종이고 주위에는 紅芯大根(코우신다이콘)을 얇게 깔았습니다.

三輪漬け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이다이와 코우신다이콘, 그리고 고추의 3개의 고리 모양에서 나온 듯한데,

이 요리 자체가 길조를 상징하는 듯 하지만 특히 다이다이는 그 자체로도 대대로 번영한다고 하는 縁起物로 옛날부터 정원에 심거나 했다고 합니다.

가운데 다이다이의 과실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라 윗부분은 짜서 쭉 둘러주었고 저기서 코우신다이콘을 한 장씩 떠서 다이다이와 토우가라시에 묻힌 뒤 다른 접시로 옮겨주셨습니다.

고추도 장식만은 아닌 듯 약간의 매운 기도 느껴지던 요리

이렇게 한 장 한장 옮겨 담은 절임을 먹고 있다 보니

クエ(쿠에, 자바리)의 스미비야키가 나왔습니다.

오른쪽은 유리네모나카라고 하는데 안에는 에도아마미소라는 미소가 들어갔고 쿠에를 먹은 뒤에 한입에 먹기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에도아마미소라는 미소 자체는 원래부터 있는 미소로 짠맛보다는 단 맛이 나기 때문에 이렇게 요리에 사용하지 않고 직접 먹을 수 있는 미소이지만, 거기에 말린 감이나 무화과, 들깨 등을 배합한 것은 직접 고안하였다고 합니다.

쿠에는 바리류 특유의 탄력감이 있는 식감으로 숯불에 구워서 향 역시 좋았습니다.

옆의 미츠와즈케는 한 바퀴였나 반바퀴였나 다 먹을 때까지 계속 리필해 주시던..

 

다음 술은 아라마사 니루가메 프라이빗 라보 익스트림 2022

아라마사에서 저정백으로 나오는 니루가메 시리즈 중에서도 22년 5월에 나온 궁극의 정미보합 99퍼센트(쌀을 1%만 깎은 술)

아무래도 매니큐어 같다고 해야 하나? 그 특유의 향이 나는데 꽤나 특이한 맛이었습니다.

테우치 쥬와리 소바에 도미살로 만든 소금이 올라간 요리

セリと牛肉の煮合わせ

소안심과 미나리를 각각 따로 조리한 것을 합친 요리

다시는 아마 가츠오 계열이 베이스였던 것 같은데..

여튼 소 안심이 꽤나 진한 맛이 났고 미나리의 향과 쌉싸름한 맛이 그걸 잡아줍니다.

식사

반찬은 氷魚(히우오, 아유의 치어), 톤부리에 イバラガニ(이바라가니)의 우치코를 버무린 것, 부리

절임은 金時人参(킨토키 닌진)이랑 마, 그리고 쿄토의 츠케모노 중 하나인 스구키즈케

밥은 야마가타현의 츠야히메를 사용

그리고 아카미소국에는 金沢春菊(카나자와슌기쿠, 카나자와의 쑥갓)이 들어가고

밥이 나온 차례이지만 이건 마셔봐야 했기에 핑크 유니콘도 주문(사전 정보 거의 없이 시켰어요)

생각보다도 훨씬 더 달았다...! 향도 꽃이나 꿀 같은 느낌

반주와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밥을 한 그릇 뚝딱하고

슷퐁(자라)의 타마고요세동을 또 받았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흰 밥과 타마고동 두 그릇이 뚝딱 비워지네요.

센챠

甘美

디저트 첫 번째

미캉의 샤베트와 세토카, 국산 아카산쇼

산쇼를 이렇게 직접 뿌려주셨는데

산쇼도 운향과(미캉과)이기 때문에 샤베트와 프레쉬, 그리고 건조된 미캉 이렇게 3종류의 형태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과 단위에서 같은 게 크게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귤은 껍질의 향이 강하기 때문에 껍질 성분을 쓰지 못하는 이런 디저트 요리에서 그걸 보강해 주기 위한 역할로 쓰셨다는데 확실히 그냥 귤 디저트를 먹을 때에 비해서 더 임팩트가 있네요.

마무리로 츠바키 잎으로 감싼 고마도후

 

전반적인 음식은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이나 양식에서 자주 사용되는 식재(트러플, 캐비어 등)를 도입하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스토익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지점이 있고 재료 본연의 맛에 코다와리를 갖고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첫 번째 요리를 예시로 들면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물에도 신경을 써서 술 빚는 물을 쓰거나 하는 듯.

제 친구 중에 재료 본연의 맛을 강조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좋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계절에 맞춘 식재를 사용하다 보니 그런 부분도 있지만 요리 전반적으로 맛의 구성에 있어서 신 맛이나 쓴 맛까지 풀로 활용하였다는 느낌인데 덕분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에도 꽤 머리에 박히는 요리였습니다.

요리는 일본 요리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레퍼런스는 있지만 일본인도 잘 모르는 요리가 나온다던가, 이름과 형식을 따와서 다른 조합을 쓴다던가 하는 변주가 들어간 느낌

 

식사는 36300엔(4월부터 인상 예정), 술이 약 2만 엔 정도

레어도가 있는 술을 시키다 보니 술 값 코스파를 따지기가 애매한데 상대적인 비교는 모르겠고 제 절대적인 경험으로 따진다면 재밌었기에 리즈너블 하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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