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모수

22.01 한남동/모수 서울

2022. 5. 19. 15:49

올해 1월에 미슐랭 서울 2스타 레스토랑인 모수에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모수에 대한 제 개인적인 인상이라고 한다면 한식 혹은 일식을 기반으로 한 컨템포러리이고 생선 비중이 높아서 생선을 극혐하는 분이랑 동행은 불가..그래서 결국 혼자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한때 모수가 혼밥을 안받는다거나 하는 글을 봤는데 제가 예약했을 때 기준으로는 그렇진 않고 한 타임에 혼밥 테이블을 하나만 받는 정도였습니다. (의외로 예약 개시일에 전화하기만 하면 평일 런치는 예약이 아주 어렵진 않았음)

이날의 메뉴

아무래도 첫 방문이고 가격대가 있는 곳인 만큼 우선은 런치(방문 당시 14만원)로 방문해 보았습니다.

요리와 곁들일 수 있는 주류 페어링(요리마다 음식점에서 판단하는 어울리는 술을 글라스로 매칭 하여 제공하여 주는 것)도 준비되어 있어서 주문해 보았습니다.

페어링 가격은 제가 방문했을 당시 기준으로 홈페이지에는 10만원이라고 쓰여 있고 방문 전달의 다른 분의 후기를 보니 7만원이어서 실제로는 얼마이려나 했는데 나중에 찍힌 거 보니 8만원이었습니다.

첫 번째 페어링은 Tibouren Clos Cibonne 2019

작은 한입들과 곁들여 먹으라고 하시네요. 

참고로 잔은 잘토와 가브리엘을 섞어 쓰시네요.

시작으로 한입거리들이 나오는데 한꺼번에가 아니라 하나씩 나오는 스타일

가장 처음으론 활가리비가 올라간 김말이가 나왔습니다.

보통 스시야의 경우도 중간 정도 가격대까지는 일본에서 팩으로 나오는 냉동 가리비를 쓰는 경우도 있는 걸로 아는데 미슐랭 2스타 파인다이닝 답게 동해산 활 가리비를 쓰신다고 하네요.

이건 버섯 타르트였는데 안에 액기스도 버섯을 베이스로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지막 한입 요리로 나온 모수의 시그니쳐 메뉴 중 하나인 전복 요리

와인 페어링 첫 잔이 한입거리들과 계속 마시라고 준 와인이라 전복까지 계속되는 건데 전복도 한입거리인 줄 모르고 와인을 먼저 비웠더니 전복이랑도 같이 페어링 해보시라고 살짝 더 따라주시더라고요. 제가 바보인걸 자랑하려니 부끄럽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세심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음 물론 부드럽긴 합니다만 워낙 스시야나 파인다이닝에서 질 좋은 전복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전복의 조리 자체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먹는 수준의 감흥이나 질감이라기엔 조금 어폐가 있지만 유바와 라임, 감태 등이 어우러진 전체 요리로 놓고 봤을 때 이 스타일의 구성은 확실히 유니크하며 재료들의 조화가 좋게 느껴졌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대방어와 숙성 감귤간장

잘 숙성된 방어랑 안에 시소였나..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페어링으로는 일본술인 ちえびじん 備前雄町 特別純米酒 生酒(치에비진 비젠오마치 토쿠베츠쥰마이슈 나마자케)가 나왔습니다.

지금 찾아보니까 니혼슈도는 -5정도로 나오는데 찾아보지 않아도 직관적으로도 달달한게 느껴져서(요근래 계속 드라이한 니혼슈 위주로 마시던 상태라 더 달게 느껴졌을지도) 영귤간장 소스의 은은한 단 맛의 요리에 곁들여 먹으니까 서로 시너지가 좋았습니다.

대문짝 넙치와 북방대합

네, 뭐 아무래도 예습을 하고 갔는데

미리 다른 후기들의 메뉴 사진들을 보면서 가장 비쥬얼적으로는 기대가 안된다고 생각했던 메뉴입니다.

모양만 보면 동네 한정식집에 나오는 아무 영혼 없는 식은 생선튀김조각 들어간 샐러드 닮아서 ㅎㅎ

물론 막상 먹어보니 따뜻하고(양상추까지 따뜻함) 맛은 전혀 달라서 놀랐습니다. 

보통 스시야나 파인다이닝에서 북방조개에 그릴 향을 많이 입히는데 이 요리는 그릴 향이 주로 레터스 쪽에 가 있어서 첫인상은 좀 어색하긴 했는데 먹다 보니 북방조개의 단 맛은 잘 느껴졌습니다. 

페어링 된 와인은 chateau Talbot의 caillou blanc이었습니다. 딸보는 레드와인만 들어봤는데 화이트도 있었네요. 주 품종으로 소비뇽 블랑이 들어가는데 당연히 저는 와인에 조예가 없어 주로 신대륙의 소비뇽 블랑 위주로만 마셔봤는데 그것과 비교하면 경쾌한 느낌보다는 조금 묵직한 느낌이라 신기했습니다.

브로콜리 솥밥은 미리 보여주시고 다시 담으러 가져가시고

참고등어 '그루노브루아'

모수의 또 다른 시그니쳐 메뉴

요리는 일단 맛있어야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한 시도들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이 요리는 기존에 알던 고등어라는 생선의 맛을 의도적으로 배반하는 맛

고등어의 생선 살이라는 느낌이나 뉘앙스가 거의 없고 굳이 비유하자면 잘 만든 저온콩피 혹은 훈제연어와 비슷한...

뱃살 쪽 끄트머리는 그나마 고등어라는 늬앙스가 느껴지긴 했지만요.

메인과 페어링 되는 와인

귤속 데리야끼 한우

브로콜리 솥밥

 

모수의 장르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은 일단 뒤로 하고,

어쨌든 한국에 위치한, 한식 혹은 일식의 모티브가 들어간 레스토랑에서는 메인이 참 고민거리인 것 같습니다.

재료의 수급이 한정적이고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소고기를 내는 경우가 많아짐->소스도 간장 혹은 간장을 베이스로 하거나 간장과 비슷한 류의 소스로 한정됨->주로 한입 크기로 썰어져 나오는데 그 한입 크기의 크기 역시 작으므로 상당히 이른 시간 내에 미지근함을 넘어 차가움으로 변모해 버리기 때문에 적절한 서빙 속도나 대책이 필요함

물론 먹는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이런 부분은 충분히 감안하고 먹긴 합니다.

모수의 경우도 이러한 연쇄가 완벽하게 해결이 되었다고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맛이 있냐/없냐로 따지자면 있는 쪽.

브로콜리의 경우 스프카레같은데에 들어가는 브로콜리 스아게(素揚げ)를 먹다 보면 느껴지는 태운 맛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 솥밥으로 구현한 느낌이었습니다. 

디저트와 함께 새로 물수건이 준비되는 점은 좋네요.

입가심 소르베

마음에 들었던 따뜻한 증편

아이스크림에 들기름 같은걸 넣는 건 기원이 무엇일까요? 모수인지 다른 곳인지 아님 역사적 기원이 있는지

요즘은 꽤 보이는 시도인데...

아무튼 이 조합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커피는 아이스 카페라떼를 선택

다과가 딸려 나옵니다. 옆의 나뭇가지로 집어먹으면 됨

마스크 봉투도 제공이 되고, 옆에는 오늘의 메뉴와 영수증을 넣어가라고 편지 봉투도 제공이 됩니다.

이런 센스 좋아요.

신기해서 찍어봄

엥간하면 화장실 사진은 패스하는데, 손수건+어메니티(Aesop)가 호텔급

백신패스가 시행 중이던 때였는데, 이때 저는 백신을 접종한 상태긴 했지만 아직 2회차 14일이 지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방역 패스 시행 중에도 법적으로 혼밥이 막힌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식당 재량에 따라 혼밥도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만 받거나, 음성 증명서가 필요하거나 제각각이었습니다.

이 글에선 세태 자체의 옳고 그름에 관해서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방문 전에 미리 식당에 오는 모든 사람의 접종 증명 혹은 음성 확인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는데, 1명인 경우도 음성 확인을 준비하면 되냐고 문자를 했더니 1명은 괜찮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식당에 방문을 하니까 혼밥이라도 절대로 음성 증명 혹은 접종 증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워낙 확고하게 말씀을 하셔서 조금 당황하며 사전에 주고받은 문자를 보여주니 제 폰을 들고 가서 한참 토의를 하시더니 정부 시책이 변경되어서 이날부터 괜찮은 거였다고 하시긴 했는데...

식사 전부터 그렇게 안 좋은 쪽으로 긴장된 텐션이면 사실 뭐 별로 편안하진 않거든요.

예약금을 받는 식당이고(워낙 노쇼 문제가 심각하니 디포짓 문화 자체에는 긍정합니다) 사전 안내 및 소개문에도 방역 패스 및 코로나 관련 등 어떠한 사유로도 예약금 반환은 되지 않는다고 명시를 하는 식당인데, 만약 제가 사전에 문자로 연락을 하지 않고 전화로 확인을 받아서 괜찮다고 한 증거(?)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과연 그때도 '시책이 변경되었는데 착오를 한 것이어서' 앉아서 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을까? 돈은 안 뜯겼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를 줘버렸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음성 확인이 필요하다고 해줬으면 저도 그 부분은 이해를 해서 음성 증명을 갖고 가거나 미리 취소를 하거나 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머리로는 이건 워낙 이레귤러 한 상황이어서 그렇고 평상시의(매뉴얼이 있는) 대응은 유기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되겠지...라곤 생각하는데

그래도 난황 알레르기가 있는 가족을 데려가긴 조금 주저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녁 타임에만 나오는 시그니쳐 메뉴들도 있긴 하니 한 번쯤 더 들려보고 싶긴 합니다.

한국에 미슐랭 2스타가 2022년 기준으로 7곳이고 그중에 4곳을 가보았는데 그중에선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이날 밥은 혼밥으로 처먹어 놓고 아는 분이 선물 보내주셔서 받아옴.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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